무심천과 청주예술제, 절반의 성공 | ||||||||||||
데스크의 주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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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청주예술제가 개막했다. 음악과 무용, 미술, 문학 등 10개 장르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이 모여 무심천과 청주예술전당 일원에서 예술기량을 한껏 펼쳤다. 개막식 후 16일까지 5일간 진행된 청주예술제는 때마침 만개한 무심천 벚꽃으로 어느때보다 풍성한 축제로 마감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예술과 계절의 향연이 빚어낸 아름다운 조화 속에 사람들이 머문 무심천은 그 자체가 생동하는 예술이었다. 올해로 10회째 맞은 청주예술제는 여러 면에서 의미 있는 행사였다. 그중 예술제 10년의 역사를 이음으로써 지속성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얻었고 행사장을 무심천으로 옮겨 추진함으로써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예술을 선보였다는데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공간 선택이 행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변수가 되는지 잘 보여준 것도 이번 예술제다. 그동안 청주예술의 전당을 중심으로 개최되었던 예술행사들이 관객몰이에 실패하면서 찾아가는 축제로 전환을 시도했지만 시민 참여도를 높이는데에는 큰 힘을 받지 못했다. 여기에 공연과 전시 여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예술행사는 다시 예술의 전당을 찾았고 관객은 없고 예술만 있는 썰렁한 축제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관객 없는 예술은 생명력을 담보하기 어렵다. 고독한 작업 속에서 탄생되는 것이 예술이지만 예술가의 손을 떠난 작품은 소유와는 상관없이 이미 관람객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만큼이나 관객도 중요하다. 보고 즐기고 감동받아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은 관객의 몫이다. 예술이 대중과 호흡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런 점에서 올해 청주예술제가 열린 무심천은 대중과 만나는 장소로 훌륭한 역할을 했다. 벚꽃이 핀 4월의 무심천으로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그곳에서 만난 예술은 감흥을 더해주며 풍성한 청주를 연출했다. 공간과 예술의 만남이 이처럼 윈윈 효과로 나타난 것도 근래 보기드문 풍경으로 기억된다. 이처럼 청주예술제가 무심천으로 인해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면 세부적인 예술행사에선 성공적이라고 말하기엔 이르다. 12일 개막식이 열린 무심천에는 관객들이 계단까지 자리를 꽉 메웠지만 시민들의 욕구를 채워주기에는 미흡했던 공연이었다. 의례행사를 최소한으로 줄였음에도 공연은 관행적으로 진행되었다. 지역 가수들의 노래로만 채운 축하공연은 새로운 공연을 기대했던 시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 더구나 방송국 녹화를 이유로 중간 중간 끊었다 이어가는 공연 진행에 자리를 뜨는 시민들의 모습도 많아 축제 열기가 고조되지 못했다. 공연과 전시가 열리고 있는 청주예술의 전당에는 관객들의 발길이 여전히 드물다. 텅빈 전시장은 무심천과 대조될 정도로 썰렁했다. 변덕스런 날씨도 이유가 되겠지만 변화를 요구하는 시민의 욕구를 반영하지 않으면 예술이 대중과 호흡하는 일은 요원함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청주예술제는 무심천이라는 개방된 공간을 선택함으로써 예술행사가 어떻게 시민들과 마음을 나누고 예술을 즐겨야 하는지를 경험하게 했다. 하지만 이는 절반의 성공이다. 이제는 예술 공간에서 누구나 보고 즐기고 놀 수 있는 것들로 채워야만 성공한 예술제로 기록될 수 있다. 평가를 통해 시민들의 문화 눈높이에 맞게 품격있는 예술행사로 채우고 예술 작품을 보기위해 시민들의 발길을 이어질 때 나머지 절반의 성공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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